시인 박목월 미발표 작품 166편 공개

입력 2024-03-12 18:53   수정 2024-03-13 00:34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나그네’)을 노래하고,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을 신고 굴욕의 길에서 귀가한 아버지란 어설픈 존재(‘가정’)를 그린 시인. 한국 현대 서정시의 거장 박목월 시인(1915~1978)의 새로운 작풍을 확인할 수 있는 미발표 시가 대거 공개됐다.

12일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박목월이 등단한 193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작고하기 전까지 노트(사진) 약 80권에 친필로 쓴 시 총 318편 중 166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우정권 위원장(단국대 교수)은 “기존에 발표되지 않은 시 중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창작 변화 과정이 잘 드러난 작품 위주로 선별했다”고 밝혔다.

박목월은 시인 조지훈·박두진 등과 더불어 ‘청록파 시인’으로도 불린다. ‘나그네’와 ‘산도화’ 등 목가적인 풍경과 특유의 서정성을 노래한 순수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공개된 노트 중엔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소장해 온 노트 62권이 포함돼 있다. 박 교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노트에 시를 쓰는 모습을 보며 컸다”며 “어머니가 평생 소중히 노트를 보관해 오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보자기에 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슴이 떨려 제대로 읽지 못할 것 같아 후배 학자들에게 작품 연구와 분석을 위임했다”고 덧붙였다.

공개된 시엔 박목월의 새로운 작품 세계가 담겼다. 기존에 잘 알려진 박목월의 시는 주로 자연과 토속적인 풍경을 노래한 시와 동시 등으로 이뤄졌다. 이번 공개작 중엔 6·25전쟁의 참혹함이나 해방의 기쁨 등 시대상을 기록한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우 위원장은 “전쟁 중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을 그린 ‘슈샨보오이’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라며 “박목월의 새로운 작품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무제’ ‘구두’ 등의 시엔 1960년대 근대화된 도시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도시민의 풍경이 담겨 있다.노트엔 박목월이 시를 창작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어 하나를 쓰는 데 몇 번을 고친 흔적 등 시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창작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고심의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박 교수는 “아버지가 어떤 시는 발표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 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다”면서도 “이번 공개를 통해 박목월 시인의 전 생애가 시와 얽히지 않은 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는 걸,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놓지 않은 분이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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